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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마르티노  님의 글입니다.
제3회 신앙체험 수기 특별상] 못 말리는 할망구 2016-03-20 20:56:45, 조회 : 1,447, 추천 : 327

가톨릭학교법인상 / 김상용 토마스 아퀴나스(서울대교구 양재동본당)

▲ 그림=문채현



아내는 유아 세례를 받은 신자로서 나와 관면 혼배를 하고 십여 년 만에 나를 신자로 만들더니 이어서 부모님도 신자가 되게 하였다. 60년 전 처녀 때는 초창기 레지오 마리에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나, 외인 집에 시집와서 겨우 주일 미사나 하면서 기도 생활만 하더니, 모시고 살던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구역 반장을 하면서 슬슬 발동이 걸렸다.

우리 동네 집배원이 별안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대방동에 있는 성애병원으로 급히 달려가 위문을 다니는 동안 가족을 통해 그분이 평소에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말을 듣자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에게 재빨리 병자성사를 주고 그의 주소지인 흑석동성당에 알리고, 이어서 돌아가시자 어려운 형편인 그 가족이 성당 연령회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게 하였다. 그분의 남편과 두 아들도 그 후 신자가 되었으니 보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은퇴 후 우리가 양재동성당 구역으로 이사 온 후 2002년 아내는 대장암에 걸려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겨우 회복되더니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데레사회’라는 데에 들겠다기에 몸이 안 좋은 나는 극구 말렸다. 늙은 할망구가 무얼 하느냐고. 데레사회는 마더 데레사의 정신을 본받아 아픈 사람을 방문하고 돕는 일을 한다는데, 척추 이상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한 가까운 데 있는 남편을 돌보고 있으면 되었지, 따로 나가서 누굴 돕겠느냐는 게 내 주장이었다.

“당신이 늘 아프니, 주님께 항상 낫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하면 되겠우? 나도 주님이 좋아하실 일을 해야지.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주님께서 좋아하실 일도 한다며 눈이 안 보이는 근위축증 환자인 김 젬마 자매의 집에 가끔 가서 말벗이 되어 주고, 척추 수술 후 몸져누워만 있는 베르나데트 할머니를 방문하는 일이 아내의 즐거움이라니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 아파트 경비원인 조계형씨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단독 주택에만 살다가 이곳 아파트로 이사 와 보니 가장 좋은 일은 경비원이 집 둘레를 쓸어서 늘 깨끗하게 해주고 택배 물건도 받아주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오면 들어주기도 하는 것이었는데 그중 조씨는 가장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무슨 일인지 천주교 신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신자인 입주자가 좋지 않은 행동을 하면 내 아내에게 “할머니, 501호가 불을 내서 온 아파트를 힘들게 하고 사과하는 말도 없어요. 그 여자가 천주교 신자라면서…” 라며 불평을 하면 아내는 자기가 한 것처럼 미안해 하곤 하였는데, 그 사람이 병이 난 것이다.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우선 그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그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 반장님께.

저는 1동 807호 할머니입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의사 말 잘 듣고 얼른 나으시길 진심으로 기도할게요. 아시지요? 우리 할아버지와 내가 천주교 성당에 다니는걸. 그래서 우리 하느님께 조 반장님 빨리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가 되려면 꽤 힘들어요. 예비신자 교육을 받으러 다녀야 하고 절차도 까다로워요. 그런데 아픈 사람은 달라요. 하느님을 믿겠다고, 병이 다 나으면 성당에 다니겠다고만 하면 외상으로 세례를 준답니다.

조 반장님, 이 기회에 천주교 신자가 되지 않으시겠어요? 그러면 우리 기도가 하느님께 더 잘 전해져서, 어떤 병이라도 꼭 나으실 거예요. 제발 얼른 나으시길 빌고 또 빌면서 드리는 말씀이니, 잘 생각해 보시고 답을 주시면 반갑겠어요.

조 반장님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꼭 만나러 갈게요. 얼른 건강해지세요.

2013년 1월 31일. 1동 807호 할머니 드림.

 

그러더니 아내는 70이 훨씬 넘은 몸을 이끌고 분당에 있는 차병원으로 문병을 갔다. 가두선교회의 천주교 선교 책자와 간단한 선물을 들고. 조씨는 반가워하기는 하였으나 입교할 의향은 없는 것 같다고 실망스러워했지만 아내는 그 못 말리는 끈질긴 정신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파트에서는 조 반장을 돕자는 의견이 나와서 모금 내용을 각 동 엘리베이터에 고지하고 한 달 동안 모금을 하여 15층짜리 다섯 개 동만 있는 오래된 아파트이고 주민이 많지 않아도 4 백여만 원이 걷혔다.

나는 그만하면 많이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그게 부족하다고 애가 타서 또 한 번 일을 벌였으니, 우리 아파트에 사는 신자들에게 각 반 반장들을 통해 새로운 모금 협조문을 보낸 것이다.

 

†찬미 예수님

한신아파트에 사시는 양재동본당 신자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아파트에서 20여 년간 일하시던 경비원 조계형씨가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전체 입주자들께서 성금을 모으셨으나 물론 매우 부족합니다.

조씨는 부인도 없고 아들 한 명과 어렵게 살았는데 (참고로 그분의 월급이 요즘 인상되어서 160만 원이며, 병으로 그만둔 상황에서 한 달 치 월급만이 퇴직금 명목으로 지급되었음) 그를 위해 천주교 세례를 받도록 권하여,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 기적적으로 병이 낫게 하고자 몇몇이 진심으로 걱정하던 중에 어려운 부탁을 드립니다.

집에서 보살펴주는 사람도 없이 병원 무균실과 집을 오가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신자가 되라고 권하는 것보다, 한 번 더 모금하여 성금을 전하면서 전교를 하는 게 어떨까 하고요. 그분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위로가 될 뿐 아니라, 하느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동안 고생만 하고 외롭게 살았는데, 주님을 알고 믿다가 좋은 세상을 만나게 해 드리는 게 우리 신자들의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요? 마침 주님 수난 시기에 부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을 여시어 성금을 본당 각 반장에게 보내 주신다면 모아서 전달하며, 대세 받기를 권유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2013년 3월 7일         

1,2반 반장 남 엘리사벳,

3반 반장 이 요세피나,

4반 반장 김 바라소피아,

1동 207호 양 모니카,

1동 807호 안 아기 예수의 데레사 드림.   

 

이 모금 부탁 편지를 세 반장이 각 신자 가정에 전하고 이어서 모은 성금이 200만 원이 넘었다. 아내는 반장 두 명과 같이 다시 분당 차병원을 방문하여 성금을 전하니 조씨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는 것이었다. 성금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잊지 않고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는 모양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도 전화를 걸어 누누이 고맙다고 인사했다. 아내가 전한 천주교 가두선교회의 작은 책자를 무균실에 들어갈 때도 지니고 들어간다고 하더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파트의 세차를 담당하는 조승익 요한씨는 마침 조계형씨와 가까운 동네에 살아서 그곳 경기도 성남시의 태평동 성당과 긴밀한 연락을 하고 그가 입·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수녀님께서 방문도 하시고 조 요한 씨와 성당 분들이 반찬도 계속 전해 드리니 드디어 조씨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씨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갔다. 우리의 마음이 아슬아슬한 가운데 드디어 그는 대세를 받겠다고 하였다. 그는 마침내 조 요한이 되어 6월 어느 날 주님의 아들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내는 양재동본당 빈첸시오회 회장과 데레사회 회장과 같이 빈소에 가서 연도를 하고 왔다. 우리 본당 신자도 아니었는데 선선히 조의금까지 가지고 아내와 데레사회 회장을 직접 운전하여 성남까지 가 주신 빈첸시오회장이 너무 고마웠다.

빈소에는 외아들과 그의 친구 두 명만 쓸쓸히 지키고 있었으나 태평동본당 교우들의 정성스런 연도로 외롭지는 않았다고 했다. 어느 날 조승익씨가 아내에게 웃으며 이 말을 전하더란다. “조계형 요한씨의 아들이 태평동성당에서 신입 교우를 위한 예비신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못 말리는 할망구가 또 한 건 한 것이다.

아내는 매일 묵주의 9일 기도 외에 ‘103위 순교 성인 호칭 기도’를 하기에 “그 기도는 왜 하느냐?”고 내가 물으니 그 대답이 우스웠다. 저쪽 동네에 가기 전에 거기 계실 것이 확실한 순교 성인들과 친해 놓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죽어서 저쪽 동네에 갔을 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그러니까 천당에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착하게 살면서 한 편으로는 그 동네에 아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게 못 말리는 우리 할망구의 지론이다. 황당한 것도 같고 조금 옳은 듯도 한 아리송한 이론이지만 아내는 확고했다.

나는 비록 몸이 불편하지만, 아내는 대장암도 다 나았고 퇴행성관절염으로 다리는 좀 아프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여기던 중 또 큰일이 터졌다. 아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반찬이 잘 안 보인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하여, 안과에 예약하고 올해 4월에 가 보니 왼쪽 눈의 시력이 전혀 안 나오는 것이다. 그 놀라움이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황반변성’이라는 병이란다. 수술도 할 수 없고 고칠 수도 없다고 하는 의사의 말에 할망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암에 걸렸다고 했을 때보다 더 낙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른 병원에도 가보고 사방으로 알아보았으나, 눈에 ‘루센티스’라나 뭐라나 하는 주사를 맞아 보기는 하되 불치병이라는 진단만 받았다. 더욱 겁나는 것은 오른쪽 눈도 결국 안 보이게 될 확률이 높다는 소견이었다. 며칠 동안 아내는 낙담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안절부절못하더니,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주님이 77년 동안 잘 보게 해 주셨으니 그것만도 감사해야지.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내가 살아오는 동안 별로 대단한 일은 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무언가 주님이 좋아하실 일을 해야 한다고 애는 썼는데 그래도 좀 했다는 일이 지나고 보니 모두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더라고요.”

맨 먼저 중고등학교 교사이었던 처녀 시절(1960년대)에는 우리나라가 가난해서 맹학교 아이들이 점자를 쓸 때 필요한 두꺼운 종이가 모자란다는 말을 듣고 학생들과 함께 달력 종이 같은 두꺼운 종이를 모아서 인천 근처 주안에 있는 맹학교에 계속 보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시집살이하면서 도저히 다른 일은 할 수 없어서 가톨릭 맹인선교회에서 낭독 봉사하는 일을 했으나 시어머님 병환으로 그것도 오래 하지 못했다. 늙어서는 다행히 데레사회에 입회하여 봉사했는데 하필이면 눈이 안 보이는 김 젬마를 맡게 된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주님이 언젠가는 눈이 안 보이게 하시려고 준비를 시키셨나 보다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쓸쓸히 웃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마누라에게 지금은 우리 성당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김 젬마에게 전화라도 해 보라고 넌지시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양재동성당에서 빈첸시오회와 하는 일이 겹친다며 데레사회를 없앴기에 아내는 이제 성당 단체에 속하지 않았으나, 그 김 젬마와는 계속 전화로라도 인연을 이어오던 중이었으니 아내는 즉시 김 젬마에게 전화를 하고 그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김 젬마와의 대화 이후 아내는 편안해지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행복한 것 같이 보였다. 내가 이상해서 물으니 내용은 이렇다.

 

젬마 자매는 젊어서 매우 가난해서 남의 지하 셋방에서 어렵게 살다가 무서운 근위축증이라는 병에 걸렸는데, 그때 아들의 나이가 세 살이었단다. 아마 3년을 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의사의 선고에도 불구하고 지금 아들이 서른 살이 되도록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온몸이 굳어져서 휠체어에 의지하고 눈도 안 보이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젬마 자매님이 큰 병에 걸리면서부터 남편 사업이 잘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그래도 집 한 칸이라도 지니고 살 뿐 아니라, 엄마의 보살핌도 못 받은 아들이 너무나 잘 성장해서 대기업 사원이 되고 결혼도 해서 착한 며느리까지 얻었다며, 하느님은 결코 불행만 주지 않으신다고 하더란다. 우리 할망구의 눈이 보이지 않게 하셨으니 우리 집에 무슨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장담을 하더란다.

아내는 요즘 오히려 은근한 희망에 들떠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이미 다 늙어 꼬부라졌으니, 아마 우리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희망!

“우리 전능하신 주님이 내게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시려나?” 하는 기대에 차 있는 할망구를 보노라면 불쌍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말려도 기어코 방문 다니던 젬마에게서 그런 좋은 위안을 얻다니!

별안간 눈에 이상이 생기니, 집안에서도 여기저기 부딪혀서 멍이 들 뿐 아니라, 부엌에서도 자주 실수를 하건만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하다. 어제는 뭇국을 끓여 내놓으며 한다는 말이 “이 뭇국은 쇠고기에다가 사람 고기도 조금 넣어서 끓였으니 더 맛있을 거요. 다 끓여놓고 보니 손가락을 좀 베어서 피가 나는구려. 아마 무를 썰 때 손가락도 조금 썬 것 같아요. 하하하.”

못 말리는 할망구 같으니라고! 주님! 저 못 말리는 할망구의 믿음을 보시어 부디부디 보살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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